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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밀양을 말해도 될까요? [밀양 행정대집행 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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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행복한
댓글 0건 조회 19회 작성일 24-06-04 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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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행정대집행 8주년) 전시장 지키는 거 심심하니까 놀러 와
친구의 한마디였다. 2022년 지방선거를 마치고, 쉬고 있을 때였다. 긴 기차를 타고 밀양으로 갔다. 친구를 찾아간 날은 밀양행정대집행이 있었던 사건으로부터 8년을 기억하는 날이기도 했다. 약간은 위축된 맘과 몸으로 전시장을 찬찬히 둘러보았다. ‘전기는 눈물을 타고 흐른다’라는 말을 따라가니 그날 밀양의 모습들이 사진으로 눈에 담겼다. 사진들을 보는 내내 그런 마음이 들었다. ‘한 장의 사진 속 이야기를 꾸준히 되풀이하는 사람들이 인스타 좋아요 늘리기 있구나.’
반듯반듯한 모양으로 걸린 사진들이었지만, 사진 속 세월은 마냥 반듯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밀양 할매’들 눈 옆으로 난 주름길처럼 그 길엔 수많은 사람들과 생명들의 끈질긴 싸움들이 녹아 있었다. 그렇지만 시간은 야속하게도 순식간에 흘러갔고, 언제든 전기를 쉽게 뽑아 쓸 수 있는 도시에 사는 나로서 밀양은, 어쩌면 ‘과거’였다. 송전탑은 지어졌고 사람들은 조금씩 흩어졌다. 할매들은 나이가 들었고, 사람이 죽어가는 현장은 더 늘어났다고 여겼으니 말이다.
그날 일정을 마치고 저녁 식사를 하러 가는 길, 밀양을 지나간 대형 산불로 새까맣게 되어버린 산들이 눈에 들어왔다. 송전탑 아래 사는 한 어른은 그날 밤 한 시도 잘 수 없었다 말했다. 밀양의 산불은 봄과 가을도 아닌 초여름에 벌어진 대형 산불 사고였다. 날이 뜨겁고 건조해 불길을 잡는 것도 어려웠다. 수많은 생명이 불길 속에서 타버렸고, 매스컴들은 밀양 산불에 대해 떠들었다. 이따금 ‘기후위기’라는 네 글자도 자주 언급되었지만 밀양에 765kV 초고압 송전탑이 있다는 이야기나 산불이 그곳으로 옮겨붙는다면 상상 이상의 재난이 벌어질 것이라는 보도를 듣긴 어려웠다.
돌아온 뒤, 사진 속 시간을 옮겨와야겠다는 순진하고 막연한 책임감이 생겼었다. 에너지 자립률 10%에 불과한 서울, 그 중 유일한 발전소가 있는 마포에 사는 사람으로서 밀양과 엮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연히 나뿐만이 아니었다. 마포 당인리 발전소 근처에 있는 지역교회와 마포녹색당의 당원들, 밀양에 가본 경험이 있는 서울의 활동가들 모두 나보다 더 큰마음을 오랫동안 가지고 있었다. 그렇게 ‘밀양에서 마포까지’ 전시를 준비했고 5일 동안 진행된 행사에 많은 사람들이 다녀갔다. 그 이후로 미흡하게나마 마포녹색당에서는 매년 할 수 있는 방식으로 ‘밀양’을 이어가고 있다.
이후로 나는 기차를 타거나, 지역을 돌아다닐 때마다 송전탑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특히나 논과 밭을 지나는 전선을 지나칠 때 오늘도 집에서, 사무실에서, 어디서든 뽑아 쓰는 전기에 녹아든 공권력과 국가의 폭력의 순간이 스쳐 갔다. 하지만 밀양이 내게 정말로 특별한 이유는, 죄책감이 전부가 아니기 때문이다. 밀양이 늘 말하고 있는 ‘친구’. 밀양은 늘 너머에 있는 존재들을 친구라고 부르며 함께 하기를 제안한다. 현안에 연대하는 사람, 사업을 준비하는 사람을 찾는 것이 아니라 밀양과 함께 오래 할 수 인스타 좋아요 늘리기 있는 친구를 찾는다. 그것이 나 같은 사람도 밀양을 말할 수 있게 하는 용기를 준다. 밀양을 변화시키는 일, 밀양에서 가능성을 찾는 일은 세상이 놀랄만한 큰일이 될 것이다. 그러나 밀양이 바라고 원하는 것은 당신이 그리고 우리가 우정을 나누는 일이 우선이다.
그렇게 다시 10년의 시간을 맞이한다. 그 사이 밀양의 친구들 모습은 많이 변했을 것이다. 분명하고 더 중요한 것은 우애와 우정으로 나눈, 변치 않는 진솔함일 것이다. 그러니 우리 망설이지 말자. 아직 싸우고 있다는 친구들과 밀양의 ‘지금’을 다시 알리자. 때마다 밀양에서 보내는 반시 한알 한알에 담겨 있는 ‘기억한다’는 소중한 마음을 드디어 나눌 때다.
<김혜미(마포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